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의 가와구치 호수를 가로질러 보이는 후지산의 풍광
일본의 3대 성산
일본인들은 고대부터 산을 신성한 장소로 여겨왔습니다. 산악 신앙을 뜻하는 ‘산가쿠 신코’는 산악 신앙과 조상 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믿음과 의식의 체계입니다. 바로 이 체계에 불교와 신토 신앙의 요소가 융합되어 탄생한 것이 슈겐도입니다. 슈겐도는 자연 숭배와 금욕에 초점을 둔 종교적 관습이 조합된 신앙으로, 헤이안 시대(794~1185)에 절정을 이뤘습니다. 슈겐도에서는 일본의 여러 산을 신성시하지만 그 중에서도 후지산, 다테야마산, 하쿠산산의 3산은 가장 신성한 봉우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에 속하는 후지산은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3,776m의 고도를 자랑하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후지산은 수 세기 동안 순례자들이 찾는 장소였으며, 정상까지 가는 하이킹 또한 여전히 인기가 높습니다. 오늘날에는 잘 정돈된 길이 산중턱에 자리한 4대 주요 하이킹 트레일의 제5역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훨씬 멀리서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에도 시대(1603~1867)에는 지금의 도쿄인 에도에서부터 긴 도보 여정을 시작해 후지산 정상까지 오르곤 했습니다.
후지하코네이즈 국립공원의 유서 깊은 오츄도길을 따라
산중턱까지 후지산을 에워싸는 길인 오츄도길은 과거 후지산에서 가장 신성한 순례길로 여겨졌으며, 후지산 정상을 3회 다녀온 사람에게만 순례를 허용했던 길입니다. 이제는 트레일 일부 구간의 관광이 가능해져 연중무휴 개방하고 있습니다. 후지산 고고메(5합목) 등산로 입구에서 오니와 지역을 통해 오쿠니와 지역(3.7km)까지 걸어가는 코스가 순례길 체험으로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가는 도중에는 후지 5호와 남부 일본 알프스, 야쓰가타케산이 연출하는 풍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주부산가쿠 국립공원의 다테야마산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주 유명한 순례 목적지이자 불도승들을 위한 수련원의 역할을 했습니다. 다테야마산을 올랐던 이들은 사후 자신의 영혼이 천당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다테야마산의 오야마 봉우리에 자리한 오야마 신사에서는 정화의 의식을 행하며, 맑은 날에는 저 멀리 후지산까지 볼 수 있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화산 가스와 증기가 솟아오르는 지고쿠다니(지옥 계곡)가 자아내는 풍광은 지옥을 닮아 있습니다.
지고쿠다니 계곡이 자리한 무로도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파인 루트로 쉽게 방문할 수 있으며 인기 좋은 하이킹 베이스이자 관광 명소이기도 합니다.
하쿠산 국립공원에 자리한 하쿠산은 ‘일본 3대 성산’ 중 세 번째 산입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서기 717년 이 봉우리를 오르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물은 불교 승려 다이초(682~767)입니다. 다이초는 당시 저명한 슈겐도 수련자였습니다. 이시카와, 기후, 후쿠이, 도야마현을 포함한 산 인근 지역 주민들은 비탈을 따라 흐르며 생명을 부여하고 작물을 기르는 데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온천수를 기리며 산을 오랫동안 숭배해 왔습니다. 고젠가미네 봉우리에 자리한 시라야마 히메진자 오쿠미야 신사는 하쿠산에 봉헌되었으며, 일본 전역에 2,700곳의 작은 신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하쿠산산 봉우리로 이어지는 길 중에서 접근이 쉽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은 사보신도 트레일과 간코신도 트레일, 히라세 트레일입니다. 하쿠산 무로도 관광 안내소 및 로지는 정상 아래 자리 잡고 있으며, 베이스 캠프 및 임시 숙소를 제공합니다. 봉우리에 도착하면 산성을 띤 청록빛 연못과 일본 알프스, 그리고 일본해가 연출하는 풍광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주부산가쿠 국립공원의 다테야마 구로베 알파인 루트를 따라 보이는 풍광
데와산잔: 재탄생의 여정
‘데와의 3대 산’이라는 뜻의 데와산잔은 반다이 아사히 국립공원 내 중부 야마가타현에 자리한 산악 지역입니다. 이곳은 거의 1,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산악 신앙과 금욕주의의 무대로 에도 시대(1603~1867) 당시 영적인 중심지로 개발되었으며, 하구로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삼나무 돌길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순례길은 현재를 상징하는 하구로산에서 시작해 과거를 상징하는 갓산산, 재탄생과 미래를 상징하는 유도노산의 세 가지 영적 장소를 아우릅니다. 전체 코스의 완주는 곧 영적 재탄생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산악 수행자이자 슈겐도 신앙 수행자인 ‘야마부시’들은 수 세기 동안 이러한 수련을 거쳐 왔습니다.
오늘날의 방문객들은 특별한 가이드 프로그램을 통해 야마부시 수행을 체험하고 산 인근 신사와 사원에서 열리는 기도회에 참여하거나, 슈쿠보(순례자의 오두막)에 머무르며 금욕주의 채식 요리인 ‘쇼진 료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영성을 추구하는 방문객들은 하구로산에서 갓산산을 지나 유도노산으로 내려오는 전체 코스를 하이킹하며 데와산잔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만끽하거나, 고대 로쿠주리고에 가이도 로드를 따라 진행되는 도보 투어를 통해 이 지역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반다이 아사히 국립공원 하구로산으로 향하는 길
구마노 고도를 따라 걸으며 활력 얻기
와카야마현에 자리한 기이 반도의 숲과 산을 타고 구불구불 이어지며 여러 갈래로 얽힌 이 순례길은 구마노 고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마노 고도는 약 1,2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헤이안 시대(794~1185) 들어 황실 구성원과 귀족들이 유서 깊은 수도인 교토에서 매년 ‘지상의 천국’을 찾아 순례길에 오르며 유명해졌습니다. 이 지역은 불교, 도교, 산악 수행, 자연 신앙의 요소가 결합된 종교 유적지가 건립된 ‘슈겐도의 탄생지’로 여겨집니다. 이곳의 순례길, 신사와 사원은 ‘기이 산맥 성지와 참배길’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습니다.
나카헤치 코스는 요시노쿠마노 국립공원 구간을 가로지르며, 해당 코스에는 구마노 나치 타이샤, 구마노 하야타마 타이샤, 구마노 혼구 타이샤의 구마노 3대 신사와 더불어 나치산 세칸토지 신사와 나치 폭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이간토지와 나치 폭포로 이어지는 돌계단 다이몬자카 비탈은 무성한 초목과 우뚝 솟은 삼나무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분위기가 유독 아름답습니다.
구마노 고도는 숙박 포함 트레킹 일정으로 전체를 체험하거나, 구간별 개별 여행 또는 가이드 동반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다이몬자카에서 나치 폭포까지 이어지는 이야기꾼과 함께하는 반나절 투어에서 지역에 얽힌 역사와 전설적인 인물, 영적 믿음에 대해 알아보거나 이세와 구마노를 잇는 역사적인 길 구마노 고도 이세지 마고세 패스 생태 관광에서 아름다운 삼림을 따라 돌길을 거닐어보세요. 공원의 구마노 지역은 일본의 영적 유산을 알아볼 뿐만 아니라 삼림욕 테라피 체험에도 이상적인 곳입니다.
요시노쿠마노 국립공원의 구마노 고도를 따라 자리한 나치산 세이간토지 사원과 나치 폭포
시코쿠 헨로(88개소 순례)에서의 명상 여정
이 1,400km 길이의 원형 순례길은 일본 본섬 중에서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의 신록이 무성한 산과 협곡과 삼림을 가로지르며 섬 주변에 점점이 펼쳐진 사원 88개소를 아우릅니다. 전통적으로 이 여정에 오르는 순례자들은 홀로 여행하며 불교의 신곤 종파를 창립한 대승 고보 다이시(774~835)의 영혼이 이들과 함께 한다고 믿습니다. 고보 다이시 대사는 9세기에 이 지역에서 수련했다고 합니다. 어떤 순례자들은 종교적 이유로 오기도 하며, 치유와 안전을 기원하거나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방문하기도 합니다. 이곳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시코쿠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고 건강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합니다.
순례길 전체를 탐방하려면 40일 이상이 걸리며, 시도하기는 어려운 코스입니다. 이러한 순례길을 맛보고 싶은 방문객들은 세토나이카이 국립공원에 자리한 고시키다이 평원에 자리한 사원 세 곳을 방문하는 8시간 도보 투어를 통해 순례길의 일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원 88개소가 자리한 순례길은 남부 시코쿠의 해안선을 주로 따라가며, 아시즈리 우와카이 국립공원을 지나갑니다. 이곳에서는 암석 단구와 험준한 절벽을 따라 걸으며 순례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현지 문화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곳의 현지인들은 순례자들에게 보통 먹거리와 마실 거리로 구성된 ‘오세타이’를 선물하곤 합니다. 시코쿠 최남단에서 아시즈리곶을 내려다보는 비탈에 자리 잡은 곤고후쿠지 사원(38번 사원)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명소입니다.
세토나이카이 국립공원 고시키다이 평원에서 바라본 풍광
모든 산을 신성시하는 일본
비록 이곳에 나온 유명 산과 순례 코스를 방문하지 않는다고 해도 공원 어디서나 자연의 신성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산길에서 벗어나 있을 때면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입구를 둘러보고 산봉우리의 작은 신사와 사원이나 번개 모양의 흰색 종이가 커다란 돌이나 나무 주변에 묶여 있는 새끼줄인 시메나와를 찾아보세요. 산책 중에는 일본의 산이란 전통적으로 ‘오르기 위한 목표’ 가 아닌, 조상을 기리기 위한 장소이자 자연의 축복에 감사하는 곳임을 상기하며 걸어보세요.
묘코토가쿠시 렌잔 국립공원의 도가쿠시 신사 오쿠샤 본사